The Diary2010. 10. 15. 16:29


한국사회가 창의적이지 못한 이유는 사는 게 재미있는 사람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정치 문제가 아니다. 모여 앉으면 모두 정치 이야기뿐이다.... 이 과도한 정치적 관심의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내 일상의 삶이 재미없어서다.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지 아무도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에게 정치 이야기는 아주 중요한 여가 소비행동이 된다.

사는 게 재미있으면, 일하는 게 재미있으면 근면성실하지 말라고 해도 근면성실해진다. 순서를 바꾸라는 이야기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인내가 쓰면, 열매도 쓰다. 도대체 열매의 단맛을 봤어야 그 단맛을 즐길 것 아닌가.

21세기엔, 지금 행복한 사람이 나중에도 행복하다. 지금 사는 게 재미있는 사람이 나중에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 21세기의 핵심가치는 ‘재미’다. 노동기반사회의 핵심원리가 근면, 성실이라면 지식기반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원리는 재미다. 창의적 지식은 재미있을 때만 생겨난다.

- 신동아(통권 584호) 김정운 교수의 '재미학'강의

흥미로운 논증이다. 창의성은 즐거움, 놀이를 통해 나온다는 것은 최근 읽었던 『몰입』『창조적 단절』『생각의 탄생』과 같은 책에서 나오는 공통 메시지다. 내가 뭔가에 몰입하고, 그 과정을 즐기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근면성실 할 수밖에 없다.

근면성실 하긴 한데 문득 시간이 따분하게 느껴지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란 생각이 들 때의 난감한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듯 하다. 근면성실의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김 교수의 '先재미 然後성실'론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아침형인간이 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나를 아침형인간이 되게 만드는 '원동력' 즉, 지칠 줄 모르는 '재미'를 먼저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한 재미만 있으면 오전 5시에 일어나는 것이 과연 힘들까? 어떤 책을 읽다가 너무 재밌 있었다. 하지만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에 눈이 떠졌을 때 '이게 웬 떡?'하고 기상해서 마저 책을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 '수면의 단잠'을 승(勝)했기 때문이다.

나는 식당이나 지하철을 타고 갈 때면 주변 사람들을 많이 관찰한다. 얼굴은 무표정이고 따분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많다. 그럴 때마다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이들의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삶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거의 비슷하게 반복되는 삶의 유형(類型)을 좇다보면 필연 삶이란 '유형(流刑)'과 같은 형벌이 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박 총 님의 '축제'에 관한 글에는 존 가드너 교수(존스홉킨스의대)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가벼운 조증(Hypomania), 즉 재미있어서 약간 흥분한 상태의 지속이 21세기에 성공을 가르는 한 요인인데,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기자수첩을 쓰임 종류별로 3개를 가지고 다닌다. 빼곡하게, 혹은 여유 있게 적어가는 온갖 생각과 아이디어는 시간이 날 때마다 들쳐보면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즐거움이 있을 때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는 것에 공감한다. 예전에 여러 단체의 실무자들이 모여 기획회의를 한 적이 있다. 아주 좋은 어떤 기회에 맞추어 프로모션을 기획해서 진행하기 위함이었는데, 참석자의 다수는 첫 인상부터 '지루함'을 풍겼다. 여러 아이디어들이 나왔지만 '굳이 할 필요가 있나?'란 반응이 나왔고, 한 사람은 전날 술을 마셔서 피곤한 표정으로 중간 중간 아이디어가 나오면 '썩소'를 날렸다. 초반에 나는 흥분해서 가지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지만, 곧 상황을 직감하고 침묵 모드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그 현장은 즐거움과 창의성이 생존할 수 없는 '지루함과 권태의 세계'였음을 곧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삶이 재미있어요?'란 질문을 하면 솔직히 당황스러워진다. 그 질문은 대개 답변을 요하는 질문이 아니라 '너도 삶이 재미없지?'란 뜻의, 은연중의 동의를 구하는 수사학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때 내가 '삶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다'라고 말해버리면 이는 상대가 결코 원하지 않는 대답이다. 아니, 그런 답변은 오히려 상대를 모욕하는 답변이 될 수 있다.

최근 들어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사람의 폭이 넓어지면서 위와 같은 질문 아닌 '동의'를 구하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소심한 A형인 나는 '뭐 그렇지요'라고 마음에도 없는 답변으로 대충 얼버무린다. 혹시라도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것이 드러날까 봐 보통 얼굴도 찡그리고, '쩝'하는 효과음도 종종 낸다.

하지만 사실 나는 재미있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힘든 일과 고민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흥분되게 하고, 설레도록 하고, 즐거움과 기대감에 빨리 내일 아침이 되었으면 하는 무언가가 많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내 윗세대가 모든 가치 있는 일을, 좋은 일을 다 해버렸다는 착각을 하고서 힘이 빠진 적이 있다. 발명되어야 할 것은 다 발명된 것 같았고, 좋은 주제는 이미 다 연구되어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아니 아직도 이 부분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단 말이야?' '이런 좋은 기회를 아무도 활용하지 않았단 말이야?'란 탄식이 절로 나오고 있다. 삶은 유한하지만, 삶을 흥분하게 할 요소는 끊임없이 새롭게 발견된다.

나는 그래도 믿는다. '삶이 재미있나요?' 이런 질문에 단순한 '겸양지덕' 차원으로 '뭐 그렇지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처럼 그런 사람들이 속으로 외치는 것은 "삶이요? 얼마나 재미있는데요!"란 말일 것이다.


- 작성자: 김정태 Instructor (유엔거버넌스센터 Communications Offic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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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적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