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ary2010. 10. 19. 17:48

le reste est inférieur au diviseur...
le reste est inférieur au diviseur... by Biscarotte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2주간 두란노예비부부학교의 멘토로 참여했었다.
결혼전 예비부부학교 프로그램을 통해서 도움을 받았고, 또 조장이었던 집사님의 간곡한
부탁을 외면하기도 힘들었고 또 내 마음에 예비부부들을 축하하고 봉사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짧은 2주 프로그램이었지만 임신한 아내와 함께 봉사하며 토요일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느라
피곤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생처음 하는 멘토에 또 그 시절 나의 모습들이 떠올라 보람도 있었다.
또 중간 중간 나눔을 가지면서 그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커플들도 있었고 그 가운데 아름답고
뭉클한 감동의 순간들도 있었다.

나는 아내를 만나면서 시작해 지금까지 1년 정도 교회를 다니고 있다. 안양에 있는 조그만 
교회를 다니면서 목사님의 말씀과 청년부, 신혼부부 모임을 통해 그 어떤 책의 이름처럼
지성에서 열심히 영성으로 옮겨가는 중이고 나 자신이 놀랍도록 기독교의 구원의 확신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교회를 가서 찬송가를 부르고 목사님의 설교를 받고
나눔을 통하는 과정이 너무나 즐겁고 은혜로운 시간임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어제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내가 참여했던 예비부부학교 기수의 집사님의 전화가 왔다.
이 분은 내가 참여할때는 전체 진행총괄을 하셨던 분이고 멘토로 참여할때는 정확한
직책은 모르겠지만 와서 멘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관리하시는 역할을 하셨다.
멘토 지원하면서 기도제목을 썼는데 내가 최근에 고민하고 있는 1. 직장생활에 대한 고민을 썼다.
- 소명과 비전있는 직업을 찾고 싶다는 내용, 그리고 아내가 덧붙혀 세상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 부연설명을 상세히 썻다.

전화가 와서 이 기도제목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으니 설명을 해달라고 하였다. 사실 이 부분이
도대체 왜 이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설명을 드렸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힘든 점들. 일이 힘든게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내가 아닌 것을 해야 하고
때로는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때로는 팀의 이익을 위해 직원을 부속품처럼 여기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정치행위, 그리고 순간순간 켤코 신앙적이기 힘든
세속의 법칙대로 살아야 함에 대한 것들을 말했다...그런데 이 분은 전혀 내 말의 본질을 이해를
못하는 분위기였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이 분이 혹시 직장경험이란게 없는 분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꾹 참고
그 분의 계속되는 질문에 대답을 하여 주었다. 생각보다 길게 늘어지는 통화와 내 말에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는 집사님의 질문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신앙생활의 기간을 알게 된 그 분은 내가 어떤 교회를 다니고
있고 평소에 어떤 공부(말씀)를 하고 있고 신혼부부 모임은 어떤 형태로 진행하냐 등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답을 들으면서 내가 그런 기도제목을 내는 이유가 나의 신앙정체성의 부족으로
귀결시키고 있었다.

집사님의 말과 마음은..그런 조그만 교회에서 그런 부부모임에서 뭘 배울 수 있고
분명한 한계가 존재할 거라는 믿음이 있는 것 같았다.
자기네가 하는 16주 짜리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걸 들으면 참 좋아질텐데..
그러면서 갑자기 삼위일체가 무엇이고 하나님이란 분이 1분인지 2분인지 하나님과 예수님은 어떤 
관계인지 등 성경적인 지식을 물으면서 내가 똑바른 답을 하지 못하면 조사 하나 하나 
지적하면서 다시 말해보라고 애기했다. 
순간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질문했다. 
지금 그 지식을 답하는게 그리고 그걸 아는게 내 신앙의 정체성을 판단받고
그게 정말 하나님 세상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냐고
미안하지만 이만 끊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예의를 지키고 싶었지만 참을수가 없었다.  
큰 교회를 다니고 있고 이런 프로그램 정도는 들어야 할텐데라는 생각
그런 조그만 교회를 다니고 있고 또 공부를 안하니 너의 성경지식이 그 정도지 않니? 라는
그 교만한 우월감이 역겨웠다.
아니 그런 분이 왜 도대체 내 기도제목을 글로 쓰고 말로 해도 전혀 알아 듣지 못하고
주위를 겉도는 말만 해대는가.

그걸 본 내 아내는 화가나서 집사님에게 다시 전화를 해서
아주 혼쭐?을 내주었다. 그 분에게 화낼 방법은 신앙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겉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야 이해를 하니까...
기독교적 배경과 환경이 절대 꿀리지 않는 것을 강조하면서 새신자를 대하는 방법의
그릇됨을 애기하면서 집사님보다 신앙의 겉모습이 우월하다는 걸 느끼게 해주며 
우리가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이 아주 우스운 듯이....
그렇게 쏘아 붙이던 아내도 분함과 과거의 상처에, 또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맘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내의 전화통화를 들으며 눈물이 흘렀다.
이 눈물은 무슨 의미인가? 자존심 상하고 분노해서 흘리는 눈물?

직장생활 4년차에 한 팀장을 떠나보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그 팀장이 떠나서 슬퍼서 흘린 눈물이 아니었다.
어떤 공정하고 올바른 업무를 진행해도 저 위에 있는 권력있는 분은
꿈쩍하지 않았다. 우리는 힘이 없었다. 그 분의 눈밖에 나면 
안되는 거였다. 조직에서도 정치는 중요한 거였다. 
존경할 수 있는 분들이 떠나는 회사 환경에 눈물이 났다.
내가 왜 힘든지 관심이 없는게 아니라 정말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그들의 의식에 눈물이 났다. 나에게도 보이는 이 불합리가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 눈물이 났다. 혹시도 아는데도 묵인하는 사람과 조직의 상황에 눈물이 났다.

오늘 나의 눈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큰 교회 다니는 집사님의 신앙깊이에 대한 눈물이며
거기서 상처받을 신자들의 눈물이며
무거운 현실과 권력과 정치 앞에서 무력하게 당할 이들의 눈물이다.
왜 우리 목사님께서 지금의 교회를 비판하는지 왜 기독교가 욕을 먹고 있는지.........
Posted by 무적미소